UDT&SEAL(26기) 동지회·군사포럼

천안함 구조중 순직한 고"한주호"준위의 인간상

쏘니리 2011. 3. 28. 11:23

순직 당일 “실종자 가족 애태우고 있으니 객실 전부 탐색하겠다고 말해”

“실종 장병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으니 내가 책임지고 해내겠다. 오늘 완전히 다 마치겠다. 함수 객실을 전부 탐색하고 나오겠다.”

순직한 특수전여단(UDT) 한주호(53) 준위가 마지막 통화에서 남긴 말이다.

UDT동지회 특임사업단 유호창(52) 부단장은 31일 “형(한 준위)이 30일 점심시간에 전화해 ‘오늘 내가 객실을 전부 탐색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유 부단장은 “위험하게 왜 그럽니까.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말렸다. 하지만 한 준위는 “통로가 확보됐으니 빨리 구조해야겠다. 실종자 가족이 애를 태우고 있으니 책임지고 해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통화 두 시간 뒤 유 부단장은 한 준위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하루에 서너 번씩 물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인데 후배들을 구하겠다고…. 형은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 지극했다”고 말했다.

유 부단장은 한 준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유 부단장은 병사 시절 포항에서 공중점프 훈련을 하다 다리를 다쳤다. 당시 중사였던 한 준위가 당직을 서다가 그를 불렀다. 유 부단장은 “형이 나 같은 사병은 쓸 수 없는 목욕탕에 들여보내주더니 몸을 풀라고 했다. 뜨거운 물에 다리를 담갔더니 거짓말처럼 다 나았다”며 마음 아파했다.

한 UDT 후배는 “형님이자 스승님,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해서 순직 당일도 두 차례나 입수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UDT에서 유일한 준위였던 고인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전설’이었다.

문종일(53)씨는 1973년 경남 진해시에서 한 준위와 함께 6주 동안 UDT 훈련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일주일 내내 잠을 안 자는 ‘지옥주’, 일주일 동안 식량 배급이 끊기는 ‘생식주’를 함께 이겨냈다.

지옥주 기간 중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젓다가 뒤를 돌아보니 한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동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고된 훈련에 지쳐 잠든 채 바다에 빠진 것이었다. 한 준위와 문씨가 함께 그를 건져냈다. 생식주에는 뱀이나 쥐를 잡아먹고, 칡뿌리를 캐먹었다. 문씨는 “바다에서 한 준위와 생홍합과 게를 잡아먹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똥통 잠복’도 함께 견뎠다.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가 똥물에 몸을 담근 채 목만 내놓고 30~40분을 버티는 훈련이었다. ‘똥독’에 몸이 퉁퉁 부은 동기도 있었다. 동기 85명 중 23명만 UDT 요원으로 선발됐다.

두 사람은 이듬해 내무반 생활도 함께했다. 문씨는 “선임들로부터 ‘빠따’를 50대 넘게 맞고 둘이서 함께 화장실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던 기억이 난다”며 “아주 침착한 친구였는데…”라고 애통해했다.

2009년 소말리아 파병 때 모습(맨위)과 2002년 훈련을 시범 보이던 KBS 방송 장면. [연합뉴스]
한 준위는 해군 근무 35년 중 18년을 교관으로 생활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지금 고통을 못 이기면 UDT 대원은 없다. 고통을 참고 견뎌라”고 훈련을 독려했다. UDT 잠수학 교관인 최호석 상사는 “순직 소식을 듣고 우리 UDT 대원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며 “모두들 (한 준위와) 함께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고 울먹였다.

박찬규(41)씨는 83년 한 준위에게 UDT 훈련을 받았다. 박씨는 “스승님은 UDT의 상징이었다”며 “따르는 제자가 유난히 많았다”고 말했다.

한때 박씨는 UDT 훈련을 포기하려 했다. 동기가 잠수함 이탈 훈련 중 사망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였다. 이탈자는 연병장에서 수백 대씩 맞던 시절이었다. 한 준위가 곡괭이 자루로 박씨의 엉덩이를 스물한 대 때렸다. 박씨는 ‘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꼼짝 않고 맞았다. 20여 분쯤 지났을까. 한 준위가 “너같이 독한 놈은 그냥 보낼 수 없다. 못 보내겠다”며 박씨를 잡았다. 박씨는 다시 교육에 투입됐다.

박씨는 “스승님이야말로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라며 “내 인생 가장 큰 고비를 넘기고 UDT 출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해군 진해기지사령부에서 근무 중인 UDT 교육훈련대장 김근한 소령도 “자퇴를 하고 싶어졌을 때 자상했던 한 교관님을 찾아갔었다”며 “당장이라도 빈소로 달려가고 싶은데 UDT 교육 때문에 가지 못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권태준(29)씨는 한 준위가 UDT 교육반장이던 2004년 훈련을 받았다. 권씨는 “중간에 못 따라오는 교육생이 많은데 한 명 한 명 일일이 이끌어주셨다”면서 “모두들 ‘나도 저런 UDT 대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백령도에서 근무했다. 그는 “UDT는 수심 45m까지 잠수해 들어가 구조하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백령도 해역은 일단 들어가면 자신의 손끝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권씨는 “내려가는 데 5분, 작업하는 데 5분, 올라와서 감압하는 데 40분이 걸린다”며 “5분 이상 들어가서 버티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 성적이 우수하고 경력이 뛰어나서 준위까지 진급하셨다”며 “너무 대단한 분이라 이번에 사고를 당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고 말했다.

김진경·심새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