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기다림.설레임 / 강허달림

쏘니리 2012. 6. 12. 19:55

어제 우연히 TV에서 들어보았던 "강허달림"의 노래

끈적끈적한 리듬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귀전에 남아있는 리듬을 잊지 못해

오늘 강허달림의 노래를 찾아보고서

친구들에게 알리도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은 우리고향(승주 상사 수몰지역 출신)출신이라

더 반가왔는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란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순간

뭔지 모를 매력에 빠진다.

그녀의 목소리는 살아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미안해져 버린 어떤 관계들,

어떤 사람들, 어떤 상황들을 한꺼번에 떠올리며 다가들었다. 강력한 환기력이었다.

‘미안해요’라는, 어쩌면 흔하디 흔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진심을 담기에는

너무 닳아버린 것 같은 그 한마디가 그녀의 목소리에 실리는 순간

마음 밑바닥을 흔들며 절절하게 사무쳐 왔다. 그녀의 목소리를 거친 순간

문득 절절해진 ‘미안해요’란 말 강허달림(36). 음반 한 장을 냈을 뿐이지만

그녀의 노래에 공명하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다.

자신이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고 부른, 자신의 이름을 따붙인 ‘런 뮤직’이란

1인 레이블에서 만든, 그래서인지 자본·물량·기계·시스템 같은 것들 말고

수공 혹은 맨몸의 느낌이 짙은  <기다림, 설레임>(2008)이 그녀의 첫 음반.

자신의 음악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어미는 그녀의 마음이기도 했을 것만 같은 제목이다.

1집을 내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기다리고 이겨냈다.

‘달림’이란 이름을 가진 자는 쉽게 무릎 꺾이거나 주저앉으면 안되니까.

 

무림 고수 같기도 한 이름 강허달림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 뒤에 자신의 의지

혹은 소망대로 달림을 붙인 것. “생의 어느 순간들, 달림이란 이름 때문에

스스로 위로받고 최면효과를 얻고….”  쓸모가 많은 이름이다.실제로도 달리기를 잘하나?

“술로 달리기를 잘 한다, 하하.” 달리는 술의 종류는 주로 막걸리.

첫경험은 ‘상사주조장’의 막걸리였다.

그의 고향은 수몰돼 이제는 지상에 없는 순천 상사면 용계리 죽전마을.

“고향마을이 수몰된 건 중2때였다. 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수용해야만 하는 줄로 알았고 환경이나 생태 개념도 없었던 때다.

 그런데 어린애가 무슨 맘에서였는지 사라져가는 고향이 안타깝고 아쉬워서

마을 풍경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때로 생각해 본다.

‘막무가내로 슬프기만 했으면 사람들이 내 노래를 좋아했을까’라고.

 “천성이 낙천적이다. 그 낙천성은 자연의 힘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데

내 노래에도 아마 그 힘이 스며 있을 것 같다.

 

친구집 라디오에서 이선희 노래 듣고 가수 되기로

고향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목포의 눈물’을 부르던 아버지 따라

젓가락 두들기며 함께 부르던 여자아이가 있고, 명절 때마다 동네 노래자랑대회에서

 ‘눈물젖은 두만강’을 구성지게 불러 인기를 모으던 여자아이가 있다.

가수라는 평생의 꿈을 품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집 라디오에서 접한

이선희의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누군가의 삶엔 그렇게 벼락치는 순간이 있다!  순천여상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도

그 학교에 기타중창반이 있어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기타 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상경했다.

 하지만 ‘맹랑 혹은 명랑소녀 서울상경기’는 결코 명랑하지만은 않았다.

신문배달은 기본이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서울 재즈아카데미 보컬과에 입학했다.

서구의 팝과 테크닉을 중시하는 동기들과 달리 자기 스타일의 판소리 발성을 고집했던 그는

동기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난 항상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속하진 못했었지’(‘독백’ 중)라는 노랫말처럼. 하지만

 ‘속하지 못한 자’의 시선은 더 많은 것들을 보기 마련.

그러다 가수 한영애를 만났다. 1996년 12월28일. 그 날짜도 잊지 못하는가 보다.

특강에 나선 한영애는 “우리나라 소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며 “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다. 자기 본연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소리를 찾는 것이

보컬이다”고 말했다. “몇 달 동안 답답하기만 했던 수업이

두 시간여 특강으로 다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과 그 분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데서 오는 통쾌함!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

몸이라는 악기가 내는 소리 과정을 더욱 궁구하게 됐다. “호흡량에 따라,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혀와 입술 모양에 따라 무궁무진 달라지는 소리가 신기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소리를 찾으려다 보니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연습이 이어졌다.

아카데미 청소부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는

동기생들이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을 흉내낼 때 오로지 발성연습에 몰두했다.

꽃만 피우려 안달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땅 속 어둠 속에서 천천히 뿌리를 키워 나가듯.

“몸을 만드는 게 첫 수순이었다. 어느 노래를 부르든 흔들림없이 내 색깔을 낼 수 있도록.

서울 재즈아카데미를 마친 뒤 그녀는 페미니스트 밴드 ‘마고’의 보컬로

음악 여정을 내디딘다.

강경순이라는 본명 대신 강허달림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 것도 그 때였다.

 

엄마 성을 이름에 붙이는 게 그렇게 좋더란다.

엄마는 그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

“술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것이 한량적 기질이라면

어머니의 삶이 깨우쳐준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배려, 따뜻함과 강인함,

자존감과 독립심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마고’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 블루스임을 깨달은 그녀는 블루스 밴드 ‘풀 문’을 결성해 활동한다.

스탠더드 재즈곡을 주로 하는 레퍼토리에 대한 공허함만큼 창작음악을 향한

욕망이 커져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한국 블루스를 대표하는 밴드 ‘신촌 블루스’의

엄인호씨 눈에 띄어 보컬로 영입됐다.

그때가 2003년. 신촌 블루스에서 1년여 활동한 뒤 솔로로 독립을 하게 된다.

 

 

 

슬픈데도 왠지 몸이 흔들어지는 노래 청소부 생활을 하며 음악 공부한 내력이나

 엄인호씨한테 발탁되는 과정 등등 그녀의 노래인생엔 굽이굽이 극적인 장면들이 많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대목에서 강하게 부정한다.

“아니, 전혀 극적이지 않다. 내겐 치열하고 치밀한 시간들일 뿐이었다.

목소리 자체가 곧 블루스로 평가받는 그녀의 노래에는

슬픈 정서와 흥겨운 리듬이 공존한다. 음반의 첫곡 ‘춤이라도 춰볼까’ 하는 노랫말처럼

슬픈데도 왠지 몸이 흔들어지는 노래,

그 흔들림 속에 평정과 위안이 있는 노래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더불어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솔직한 욕망을 갖고 있다.

독백 같은 읊조림은 사적 경계를 훌쩍 넘어 공감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듣다 보면 문득 마음에 날아와 꽂히는 노랫말들. 이를테면 ‘난 그저 나이었을 뿐이고

넌 그저 너이었을 뿐인…’(‘기다림, 설레임’ 중) 관계는 얼마나 슬프고 가망없는가.

우리가 될 수 없는 관게. 너와 나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하지만 때로는 난 나이고 넌 너라는 평행선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삶이기도 하다는 걸

일러주는 노래. ‘세상들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나를 바라볼 수 있게…또다시 쓰러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웃음 짓고 아무 일 없단 듯이

그렇게 그게 나인 걸’(‘독백’ 중) 역시 독백인 동시에 삶에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독백’의 마무리는 ‘이룰 수 없는 꿈조차도 날 포기할 수 없게’.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가 된 꿈.

그래서 더 간절하다.

그녀가 부르는 노랫말들은 용량 큰 보자기처럼 많은 것들을 품어 안는다.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어떤 감정이나 각성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추모제에서 불렀던 ‘미안해요’ 역시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 추모제에선 ‘목포의 눈물’도 불렀다.

‘목포의 눈물’은 “평소에도 무반주로 가장 많이 부르는 곡”이라고.

 

 

 


기다림.설레임 / 강허달림

 

반딧불 춤추던 곳에 앉아 밤새껏 웃음을 나눴지
휘둥그레진 눈빛 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의 움직임조차 하염없이 가다보면
어느새 한움큼 손에 쥐어진 세상들 설레임들


그누가 널 보았던가 왜 숨길 수없이 드러내던지
빼곡히 들어찬 숨결조차 버거우면


살짝 여밀듯이 보일듯이 너를 보여줘
그럼 아니. 또 다른 무지개가 널 반길지

난 그저 나였을 뿐이고 넌 그저 너였을 뿐이니
너도 나도 나도 너도


너나할 것없는 세상에 생각에 최선에 말들에 웃음에
이미 별 볼일 없는 것들이진 않아


기다림속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겠지
아무렇지 않는 듯 흘려버린 시간들 공간들도


얘기할 수 있게 또 그래 기다림이란 설레임이야
말없이 보내주고 기쁠 수 있다는 건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바보같으니

그래 나는 촌년이다!”

촌년의 동력으로 오늘도 달리고
“니 노래들 다 좋은디 테레비에 나오는 노래 좀 하문 안되냐”고 때로 묻는 엄마.
그러면 “어쩌겄는가, 엄마가 그렇게 나(낳아)놨는디”라고 대답하는 그녀.

‘나놨는디’란 말에는 순치되지 않는 기질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전라도의 땅과 기운과 음식과 산과 평야가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서울에서 살면서 한동안 ‘촌년’이란 열등감에 시달렸던 그녀지만

이제는 전라도는 나의 든든한 빽이라고 말하게 됐다.

 “서울에 상경해 음악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 촌년이라는 콤플렉스가 생겼다.
하지만 살다 보니 내 자신을 옥죄었던 태생이 되려 나의 가장 큰 자산이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자연과 어울려 살고 이웃들과 내남없이 살았던 경험이

내 음악의 밑바닥을 이룬다.”
“그래 나는 촌년이다!”라고 인정한 순간 한없이 자유롭고 당당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그게 나인 걸!’ 촌년의 동력으로 그녀는 오늘도 달린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절망해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아직 희망은 있고 모두 사람이었으니…. ‘옛 일기장’이란 노래에 나오는 가사인데

말보다는 노래 불러드리는 게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음반이 몇 천 몇 만 장 팔리고 콘서트에 수천 수만 관중이 오고 그런 건

그녀에게 많이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삶의 어느 순간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노래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르는게  강허달림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