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사랑의 U-보트
7월 14일 맑음
불과 300미터 정도밖에 않되는 거리를 일부러 릭샤에 올라타 인도네시아 돈 5000루
피를 지불하는 선심을 베풀고 선박회사에서 배치한 셔틀버스에 올라 벨라완 포-트로
한시간 정도를 달린後 오던 과정과 마찬가지로 수속을 마치었는데 페리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혹시 날씨 때문에 배가 뜨지 않나하고 초조해져 갔
는데 무려 5시간 정도의 대기 끝에 승선을 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해상 날씨 관계로 관망하고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올 때 와는 달리 초과 탑
승인원이 않되어서 배정된 내 자리에 앉으려니까 구석자리라 너무 불편하여 휴대용
작은 배낭만 던져두고 뒷자리에 서 있었는데 어느 무슬렘 처녀가 나를 부르며 쌩글
쌩글 미소짓고는 자기 옆자리가 두 개나 비었으니 편안히 앉아가라고 배려해 준다.
(쭈아쭈아! 흐흐흐..)
그녀도 내가 앉자마자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힐힐대면서 그 맑은 눈동자로 내 얼굴
을 잠시도 떼지않고 응시하며 현지말로 '쭝얼쭝얼' 쫑알쫑알'대면서 과자도 지 손으
로 내 주둥이에 멕여 주고 지 이름도 알려주는데 그녀의 이름은 '셀리'.
1976년 4월 7일 生으로 인도네시아의 메단에 살고 페낭의 한 일본 전자회사에 취업
하러 일행 4명과 동행中이란 것을 중국계의 한 중년 남자가 통역해 주었는데 이른바
다자간 국제 통역을 한 셈으로 통역관도 그녀의 생기와 발랄함에 놀랐는지 나보고
그녀를 가방에 넣어서 한국에 데리고 가라면서 낄낄대었다.
(솔직이 난 세계를 통털어 숱한 많은 여자를 만났봤어도 이렇게도 순수하게 생기 발
랄한 처녀는 내 생애에 처음이었다)
셀리가 자기 여권을 일부러 보여주어서 그녀의 생년 월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대
신 수속서류도 작성해 주어서 그녀의 신상을 생생히 기억하게 되었지만 유감스럽게
도 내 여권도 좀 보여 달란다. 어쩌지................
난처해졌다. 않돼져! 이걸 보여주면 짜부라진 내 청춘을 들킬테고 그러면 처자식,쌔
끼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금방 연상할 것은 물론, 잘못하면 거짓말로 변명할 뻔 할런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국제적인 비밀임무를 띠고 있는 놈처럼 비밀 문서(여권)
가 든 전대를 붙잡고 무겁게 폼을 잡으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다행히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것이 그녀는 중요한 영어 단어 몇마디뿐, 전혀 영어를
모르기도 했는데 그녀를 실망 시키고 싶지도 않거니와 내 마음 한구석에는 총각같
은 괜한 설레임으로 파도에 요동치는 보트의 흔들림과 더불어 이리 저리 엉퀴어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 주소 적어 줬는데 내 전화 번호가 빠졌다고 추가 기입하라고 해서 집 전
화, 핸드폰 번호 그리고 e-mail 주소까지 몽땅 적어 주었는데 잠시후 그녀가 내 팔목
을 내밀라기에 영문도 모르고 왼손을 쑥 내미니까 그게 아니고 오른손 내밀란다.
(이게 회교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손 팔찌였다. 그녀가 몸소 끼워준 손목 팔찌는
♡♡♡마크가 뱅뱅 돌아가며 그려져 있었다.(황홀~몽롱 히히힛)
나도 무엇인가 주어야 했는데 그놈의 끈달린 볼펜 선물을 엉뚱한 데에 몽땅 기부했
던 것이 순간 엄청 후회막심 되었다.
고심한 끝에 발견한 것이 이도령 마스코트이다. 이 선물은 원래 이 여행中 가장 소중
한 이에게 선물할려고 비장의 무기로 감추어 두었는데 메단의 출판사에 다니는 '싸
리'라는 아주 못생긴 가스나(여드름 투성이였슴)가 졸르고 졸라 줄 뻔했던 것인데 참
말 다행으로 잘 보관 하고 있어서 나도 몸소 그녀의 몸에 바짝 밀착하여 핸드빽 쟈크
에 귀여운 마스코트를 걸어 주니까 그녀는 너무 좋아 죽을란다.(까르르르~~~~~~)
마지막으로 즈도 소중히 하는 가족사진을 주었다. 언니랑 같이 찍은 사진이란다. 챠
도르 대신 머풀러를 뒤집어 쓴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도 줄 사진 없어서 여권용 사진을 스패어로 비치해 둔 것을 주었다. 이로써 우리의
(♡)징표는 모두 교환한 셈이었다.
☞여권 사진은 여권 분실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스패어가 필요하다
그녀는 내가 짝사랑하는 여인 개그우먼 '정선희'와 어찌 그리 닮았을까? 웃고 생글생
글하는 모습부터 말 한마디하는 제스추어까지 어찌나 말이 빠른지 '정선희'와 꼭
빼닮아서 마치 그녀의 분신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출항後 얼마 않되어서 배가 파도에 심하게 요동칠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인도네시아어를 나를 아가 다루듯 수백에서 수천가지 단어와 용어를 가르쳤는데, 기
상이 나빠서 배가 흔들렸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배가 페낭에 도착할 때까지 과
외공부했으면 인도네시아어를 몇 시간만에 독파하는 기록을 세웠을려나 모르겠다
.
안따라 하거나 발음이 잘못되면 내 주둥이 틀어 잡고 나를 혼낼 정도였으니까 말이
다. 허나 죄송하게도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하다가 순전히 현지말로만 설명하니
까 나중엔 하나도 머리속에 남아 있는건 없었다.
파도가 심했다. 내가 덮어준 등산용 파카로도 에어콘 탓으로 '덜덜' 떨기에 파카 모자
까지 졸라매어 바람한 점 없도록 애써 주었는데도 그녀가 열대지방에서 자란 탓으로
계속 추위를 참지 못하여 이번에는 아랫도리에 수건과 '스카프'로까지 조심스럽게
그녀의 엉덩이에 바짝 밀착시켜서(어쩔 수 없이 그녀의 엉덩이도 쬐금 만졌다) 바람
막이를 시켰는데 무슬렘인들이 볼까봐 주변 시선에 아주 신경 많이 썼지만 그녀는
이슬람 여성의 터-부를 깨고 주위의 시선에는 크게 신경을 안두는지 처음에는 살포
시 그 다음에는 나의 어깨와 가슴에 밀착시켜가며 스르르 잠들어 갔고 이따금 잠이
깰 때마다 '괜찮죠?' 하면서 신혼의 즐거운 신부모양 환한 미소를 짓곤했다.
'인샬라'! 이 여인을 여기 보트에 태워 주어 마치 신혼 여행와서 사랑의 유람선에 실
려가는 것처럼 잠시일지 언정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었고 인자 만나게 해준
신에게 한편으론 원망도 해봤다.
나도 잠시 잠이 들어 인도네시아에 있는 호수의 작은 섬 '이니스프리'에서 그녀와 단 둘이서 작은 가지 엮어 오막살이 짓고 도란도란 아홉이랑 콩도 심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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