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의 탄트라

[스크랩] 제18편 인도네시아의 이모저모

쏘니리 2009. 6. 20. 18:49

18.인도네시아의 이모저모

삐끼들 얘기가 나오니까 앞뒤가 안맞는 소개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은 정말 무척 친절

하다. 영업상의 잇속으로도 그렇겠지만 기냥 보통사람끼리 지나가는 만남에도 환한

미소와 인사가 천진함 그대로 때묻지 않은 순수가 배어나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쟈키아'호텔은 버스에서 하차하여 불과 300미터 거리에 있었는데 호텔에

 

당도하자 많은 연고인들이 쟈바 헹님을 맞이하며 대환영이다.

 

그들中에는 껌둥이 미국인도 있었는데 몇 년째 여기서 기냥 죽치고 있단다. 미국의

 

직업군인 출신으로 장기간 군복무하고 나오는 연금으로 그냥 저냥 여기가 더 살기

 

 좋은 모양이다. 그렇겠지, 돌아가봐야 미국같은 인종차별 천지인 나라에서 알아줄

 

 놈 없을테고 별로 마땅히 할 일도 없을테니까...

 

 

 

내가 '렉토바'를 떠나 혼자서 다시 이 호텔을 찾았을 때는 우연히 두 여성을 알게 되

 

었는데 한 여자는 노년의 호주 사람인데 10년째 여기서 거주하며 현지언어도 능통하

 

여서 순전히 인도네시아어로만 니콩내콩해댔는데 비자가 만료되면 페낭으로 나갔다

 

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코스 순환을 그대로 되풀이 한다는 것이고 한 여자는

 

 한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영국여성으로 웃음 한 구석에 어딘가 모를 쓸씁레한 우수

 

가 숨겨져 있고 네 살짜리 천진난만하게 귀여운 딸네미를 데리고 약 1년째 데리고 산

 

다는데 꼬마에게 "아빠 어디 있냐"고 묻자 "대디는 하늘나라에 계셔"하는데 주방 아

 

즈매가 대디 얘기는 '샷-더 마우스'하라는데도 현지인 중 까불이 건달 한 놈이 "내가

 

니 아빠 해줄께, 몸도 건강하고 이렇게 알통까지 나왔으니(웃통 벗은 몸으로 팔뚝근

 

육과 똥배까지 힘주며) 니엄마 아주아주 이뻐해 줄 수 있어"하니까 꼬마는 절대 사

 

양! "그러면 얘 어때?" "또 얘는?" 마지막으로 내도 싫다는데 나한테는 말만 싫지, 표

 

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잠깐 헤어져 내가 않보인다고 애써 찾아서 빠이빠이해대는 것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

 

가 없었다. 마침 내 옆방에 방을 잡았길레 꼬마 엄마와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그림엽서와 끈달린 볼-펜까지 선사하니 꼬마는 물론이고 꼬마 엄마의 우수도 일

 

순 사라며 보이며,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며 연신 고맙대고 인

 

사해오니 기분이 좋았다.

 

여기 처음 도착시 도미토리 방이 꽉차서 트윈 베드에서 기숙하게 되었는데 인도네시

 

아 머니로 25,000루피이고 2인용이니까 절반씩 부담하니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1,000

 

원이 조금 넘는 계산이 나오게 되니 외국인에겐 물가가 싸기는 되게 싼 것이었다.

 

3년 前에 헹님이 여길 다녀갈 적에 비하여 달러당 30% 가깝게 환율이 올라 갔고 물가

 

는 거의 그대로 이라고 하니 여행자들에게는 더욱 환영할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으

 

니 쇼핑도 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양놈들이 아니나 다를까 싶게 몇 년 前만

 

해도 발길이 뜸했다는 것인데 어디서 무얼 듣고 오가는지 찾아오는 여행객이 한참

 

불어 났다고 한다.

 

 

4년 前에 우리와 같은 외환위기를 겪은 인도네시아는 국제통화기금위에 큰소리 쳐가

 

며 '느그들 돈 필요없다'고 대포를 놓을만큼 자원이 풍부하여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는 가능한 나라이기도 하고 현재 수도 쟈카르타에서는 학생을 비롯하여 각계의 민주

 

화 소요가 끊이지를 않아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여기 메단은 원래 광장이나 전쟁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화란(네덜란드)의 통

 

치이래부터 종족분쟁이 계속되었고 지금도 종족 및 종교분쟁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

 

이기도 하나 이 나라는 태국과 달리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무지 좋은편이다.

 

 

 

태국이 인도차이나 戰時(2次대전) 약삭빠르게 일본군에게 전진기지를 제공하고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지네 나라의 옥토를 본존하여 지금껏 일본과는 아주 절친한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現 라마국왕 9세에게도 큼직한 선물을 별도로 기부하

 

고 '돈-므앙' 국제공항을 지을 때도 일본의 경제적인 지원없이는 불가능 했었다는 것

 

이다.

 

이에 反해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단 좀 덜했지만 그 戰爭 당시에 수 많은 피를 일본군

 

에게 흘린 상처를 안고 있고 시중에 돌아 다니는 미쯔비시 자동차들이 가득하지만

 

한국에서 나온 현대車,대우車들도 더러 돌아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다. 극동건

 

설,현대건설,대우중공업,삼성전자,기아산업 모두 알고 있고 있어서 한국인이라면 제

 

대로 먹히는 곳이라 이들에겐 너무 잘알고 있는 조국의 영광스런 후광으로 대접을

 

톡톡히 받는 셈이다.

 

한편으로 조선인(북한인)들도 자주 발길이 오간다고 하는데 아마도 고위층 가족을

 

중심으로 휴가를 즐기러 이곳을 찾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내가 방콕의 공항에서 고

 

려항공이라는 푯말이 바로 아시아나항공과 나란히 옆의 창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었다.

 

예전에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닐 때 아프리카의 유학생 및 그 밖의 나라에서 북한 사람

 

들도 나이트나 식당등에서 가끔 부딪혀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여기 호텔에선 그런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호텔의 골목을 빠져 나와 백색 모스크의 대이슬람 사원 앞에 있는 백화점에서 필요

 

한 물품을 쇼핑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마누라 수영복이라도 선물할까 망설이다가 그

 

만둔 것이 여간 후회되는 것이 아니었다.

 

고급 수영복 제품도 우리돈으로 몇천원에 불과했지만 예전에 외국다닐 때 물자가 부

 

족했던 시절이라 이 사람, 저 사람 따라서 덩달아 쓸데 없이 쇼핑을 했었던 前歷으로

 

늘 부끄럽게도 생각하여서 외국 나와서는 현지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이외에는 구입

 

않하는 것이 철칙이었는데 결혼생활 한참이 되어서도 수영복 한번 입어 보지 못한

 

마누라를 생각하니 여간 씁쓰레한 것이 아니었다.

 

방콕으로 돌아 갔을 때 카오산 거리를 뒤져 보아도 뱅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여성용

 

수영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 항상 마누라에겐 막차를 타는 놈이라서

 

아예 늙으막에는 개밥될 줄 알고 황혼의 부르스용 열차를 탈 준비를 해오고 있다.

 

출처 : 소니의창가에 다가오세유~더 가까이!
글쓴이 : 소니 원글보기
메모 :